결론 : 로마인은 하루 세끼를 먹었습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그러는가 싶죠? 그런데 로마제국은 2천년에 존재했단 말이죠. 동시기 동쪽의 최강국인 중국은 어땠는지 봅시다. 서기 79년 후한의 황제인 장제는 각종 제도를 정비하기 위한 백호관 회의를 열었는데, 여기서 하루에 몇번 식사를 하는지에 대한 예법을 정했습니다. 여기서 말하길 황제는 하루 4회, 제후는 3회, 공경대부는 2회, 평민은 필요할 때 먹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제후국이니 왕도 3회를 먹었죠(간식제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아침저녁으로 두끼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물론 농사짓는 평민은 농번기에 힘을 쓸 때를 위해 서너번 이상도 먹었을 겁니다. 로마 시대를 빼고는 유럽도 하루 두끼를 먹었으니 로마가 얼마나 잘 먹고 산 건지 알만 합니다.
로마생활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대부분 카르타고를 잡고 지중해를 장악하게 된 포에니전쟁 이후 로마인의 하루세끼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하루 식사를 뜻하는 용어가 두 종류에서 세 종류로 늘어났기 때문이죠. 하루 식사 횟수가 변했다는 것은 나라가 풍요로워졌다는 것, 즉 로마가 근본적으로 구조를 바꾸게 되었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포에니전쟁 이전 로마인들은 옌타클룸(Jentaculum)이라는 아침식사와 케나(체나 Cena)라는 오후 식사 두 번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아침식사는 일어나자마자 빈 속을 채우기 위해 간단하게 죽을 먹었는 것이 전부였으므로 제대로 된 식사는 오후 2~4시에 먹는 케나 시간에 푸짐하게 한 번 먹는 것이 전부였죠. 가끔 귀족과 부자들은 베스페르나(Vesperna)라는 이름의 디너 파티를 열기도 했습니다만 이것은 매일 먹는 끼니는 아니었습니다.
신체 건강한 성인이 오후 4시에 밥을 먹고 자기 전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눕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먹는 음식'이라는 뜻의 메렌다(Merenda)를 먹기도 했는데 이것도 아침처럼 죽 한그릇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뜻하는 단어 중 Supper라는 단어가 프랑스어 souper, 즉 수프(soup)에서 온 것도 이런 까닭이겠죠. 농업을 위주로 하던 시절이었으니 일찍 일어나서 간단하게 요기하고 일하다가 오후에 왕창 먹고 해질때까지 일하는 모양새는 동양권과 다를 바 없는 형태였습니다.
포에니 전쟁에 승리한 후, 카르타고를 물리치면서 지중해 일대의 무역을 로마제국이 장악한 뒤에는 기록에 프란디움(Prandium)이라는 정오에 먹는 식사를 뜻하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합니다. 정오에 먹는 식사, 즉 점심식사가 등장한 겁니다.
제대로 먹는 점심식사가 등장하면서 저녁식사였던 케나의 시간대는 자연스럽게 점점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전성기에 들어간 로마는 기원전 2세기 이후 많은 식략을 식민지와 속주에서 들여오게 되었고, 덕분에 로마 시민은 예전처럼 일찍 일어나 일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대신 노예를 동원해 포도원을 일구고 농장을 대규모로 경작하게 되었죠. 이제 평민들은 육체노동 대신 상업이나 공업에 종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점심을 많이 먹는 것 보다는 일하고 돌아와서 저녁을 잘 먹는 쪽으로, 즉 현대인이 먹는 하루 세끼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죠. 이렇게 포에니 전쟁은 로마인의 식생활을 현대인처럼 풍족하게 만들아 주었습니다.
그럼 이제 하루세끼가 실현되었으니 다음단계는 무엇일까요? 양이 충족되면 다음은 질이죠. 다음 시간에는 질적인 향상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