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n style="letter-spacing: 0px;">로마의 8대 황제 비텔리우스는 고작 8개월의 재위 기간 동안 엄청난 양의 돈을 먹는데 썼는데, 그 비싼 굴을 앉은 자리에서 1000개 이상 먹었다고 합니다. 13대 황제 트라야누스 황제는 전쟁에 나가서도 굴을 먹었습니다. 황제 뿐 아니라 </span>로마 사람들은 굴을 겁나게 좋아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굴은 영국, 즉 브리타니아산 굴이었는데 값이 당시 같은 무게의 금값 정도였다고 합니다. <span style="letter-spacing: 0px;">쉽게 부패하는 굴을 먹기 위해 로마의 부자들은 선선한 지하창고를 만들어 알프스산맥에서 가져온 얼음과 눈으로 굴을 신선하게 보관했고, 좀 신선도가 떨어진다 싶으면 굴젓을 담갔습니다. 워낙 굴을 좋아한 끝에 그들은 세계 최초로 굴 양식에 성공하기도 했죠. 당대의 굴 양식장 경영자 오라타는 호수 여기저기에 말뚝을 박고 수평으로 로프를 연결한 다음 수직으로 내린 로프를 달아 거기에 굴 종자를 붙여 양식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이 쉽지 거대한 양식장을 건설하는 건 어지간히도 큰 산업이 아닐 수 없지요.</span>
문제는 겨울이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얕은 물이 얼면서 굴이 다 얼어 죽는 일이 종종 생겼죠. 이에 오라타는 대형 수조가 있는 양식장을 건설한 다음 그 옆에 벽난로를 설치하고 대형 수조 아래로 배관을 연결해 바닥을 데웠습니다. 일종의 온돌을 만든 셈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을 데울 수 있는 기술이 생긴 덕분에 나중에 로마의 대중목욕탕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로마 대중목욕탕 유적지에서는 굴 껍질이 많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찜질방 가서 달걀을 까 먹듯 굴을 까 먹은 셈이죠.
양식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로마는 이곳저곳에서 굴 양식장을 건설하거나 자연산 굴을 채취했습니다. <span style="letter-spacing: 0px;">우리나라 속담에 '통영/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나마 통영이나 남양은 굴이 많이 나는 곳이라 그럴 수 있지 영국을 비롯한 먼 곳에서 실어오는 굴은 정말 귀한 물건이었죠. 영국에서 로마까지 가는 길은 험로도 많은데다 알프스까지 넘어야 합니다. 거의 두 달은 걸리는 이 길로 최고급의 굴을 신선하게 운반한다는 것은 현대의 냉장 기술이 있지 않는 이상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과연 로마인들은 어떻게 굴을 운송한 걸까요?</span>
<span style="letter-spacing: 0px;"> 일단 영국에서 출발할 때 바닷물을 가득 채운 항아리에 굴을 싣고 배를 띄웁니다. 이 굴 운반선은 중간 기착지인 프랑스 지역의 보르도 등에 들러 바닷물을 교체하거나 중간 기지에 설치된 간이 굴 양식장에 내려놓고 그곳에서 키우던 굴과 새로 가져온 굴을 교체하는 식으로 신선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이런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신선한 굴을 먹으려 했던 것이지요.</span>
평민들은 허브를 많이 썼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이 회향이라고 불리는 산미나리 씨앗입니다. 회향을 먹으면 힘이 나고 용기가 생긴다고 믿었던 로마 사람들은 군인들의 음식에도 회향을 넣었습니다. 허브는 지중해 지역에서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음식이었기에 군대 짬밥에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지역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회향은 고대 그리스어로 마라토스(Marathos)라고 불렸습니다. 마라토스가 자라는 땅이라는 것이 바로 마라톤 평야, 지금의 마라톤 경기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그 곳입니다.
로마의 부자들은 허브에 이어 향신료도 많이 썼습니다. 특히 후추도 마음껏 썼죠. 16세기 대항해시대 시절에도 후추는 금값이었지만 놀랍게도 2000년 전에 그들보다 쉽게 후추를 손에 넣을 수 있던 겁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대정벌 이후 향신료 무역 루트가 개발되어 인도까지 이르는 무역 루트가 개설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낙타를 탄 대상단이 죽을 고생을 해서 옮겨와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AD100년 무렵부터는 어느 정도 사는 로마인들은 편하게 향신료를 쓸 수 있었습니다. 바로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하고 이집트를 속주로 만들게 되면서 배가 아프리카를 돌아 나갈 필요 없이 홍해를 거쳐 인도양으로 나가는, 현재 수에즈 운하와 비슷한 루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해상 교역로가 생기기 전까지 고생고생하면서 실어왔던 향신료가 해상 무역 루트를 통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로마인들은 후추, 생강, 계피, 정향, 육두구 등을 쉽게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1년에 후추만 1만6천톤이 수입되었다고 하니 후추값도 많이 떨어졌는데, 금값까진 아니어도 비싸긴 했어요. 약 500그램당 4데나리, 즉 성인 남성이 나흘간 노동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으니까요.
로마밥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모든 내용은 윤덕노 선생의 '음식으로 읽는 로마사'에서 가져온 내용이며 더 자세한 내용은 책을 사서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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